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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갈원여병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10-27 20:4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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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독일 베를린 마르틴 그로피우스 바우에서 선보인 티노 세갈의 작품. 별도의 조형물 없이 사람 사이의 대화와 만남으로 예술을 구현하는 작업이다. (타라카 제공)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티노 세갈(Tino Sehgal)이 제주에서 관객에게 하룻밤을 권합니다. 작품을 보기 위해 잠시 전시장에 들르는 대신, 그곳에 머물며 걷고 식사하고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까지 예술의 일부가 됩니다.
전시가 끝나도 가져갈 작품은 없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길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와 나눈 말, 마주쳤던 몸짓과 목소리만 각자의 기억에 남습니다.
오는 30일부터 11월 29일까지 서귀포시 색달동 타라카 제주에서 열리는 세갈의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입니다. 약 20시간 동안 이어지는 숙박형 프로그램으로, 주최 측은 미술관과 갤러리를 벗어나 숙박시설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첫 단독 프로젝트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봄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열었던 세갈이 이번에는 제주의 숲과 정원을 선택했습니다. 전시실에서 사람의 움직임과 관계를 작품으로 만들어온 작가가 관객의 체류 시간까지 작업의 범위로 끌어들입니다.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이유는 숙박이라는 형식에만 있지 않습니다. 작품을 소유하거나 기록하지 않는 예술이 숙박과 식사라는 유료 서비스와 결합합니다. 무엇을 남기지 않는 예술에 사람들은 왜 비용을 지불하는지, 관객이 경험한 시간은 어디까지 작품이 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프랑스 파리 팔레 드 도쿄에서 진행된 티노 세갈의 전시. 관객들이 머무는 공간에서 사람들의 움직임과 만남을 통해 작품이 구현되고 있다. (Bisou poisson, 2016년 12월 1일 공개 영상)
■ 미술관의 나선형 경사로가 제주의 정원으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세갈의 작품 세 .이 소개됩니다.
정원에서는 〈디스 프로그레스(This Progress)〉(2006), 길목에서는 〈디스 유(This You)〉(2006)가 진행됩니다. 레스토랑에서도 별도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디스 프로그레스〉는 서로 다른 세대의 해석자들이 관객과 대화를 이어가는 작품입니다. 관객은 어린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른 연령대의 해석자를 만나고, 처음 시작된 대화는 새로운 질문과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2010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선보였을 때는 미술관의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관객은 이동하면서 서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제주에서는 그 공간이 정원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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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건축이 만들어낸 이동 경로 대신 숲과 정원의 길이 관객을 이끕니다. 대화가 시작되는 장소와 주변 환경도 달라집니다. 같은 작품을 다시 선보이더라도 관객이 경험하는 상황은 이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세갈은 자신의 작업을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이라고 부릅니다.
작가는 해석자들의 행동과 움직임에 일정한 규칙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관객이 어떤 대답을 하고,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까지 모두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작품은 정해진 구조를 바탕으로 반복되지만, 매번 다른 사람들의 만남을 통해 실행됩니다.
미술관에서 관객은 대체로 작품 앞에 서서 바라봅니다. 세갈의 작업에서는 관객의 반응이 작품의 진행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화에 참여하는 방식과 머무는 시간에 따라 경험하는 내용도 달라집니다.
제주에서는 이러한 만남이 산책과 휴식, 식사 사이에 놓입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과 일상적으로 머무는 시간의 경계가 이전보다 흐려집니다.
현대미술가 티노 세갈. 2013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자로, 오는 30일부터 제주에서 관객의 체류 시간을 예술적 경험으로 확장하는 숙박형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타라카 제공)
■ 로댕의 〈키스〉를 움직이게 한 작가
1976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세갈은 정치경제학과 현대무용을 공부했습니다.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무용에서 출발한 움직임과 신체의 언어를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옮겨왔습니다.
대표작 〈키스(Kiss)〉(2002)는 세갈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키스〉를 비롯해 미술사에 등장하는 연인들의 자세를 두 사람의 몸으로 재구성합니다. 해석자들은 서로의 몸을 움직이며 여러 자세를 천천히 이어갑니다.
조각과 회화에 고정돼 있던 형상이 실제 사람의 몸을 통해 변화합니다. 작품을 이루는 재료도 대리석이나 청동이 아닌 사람의 움직임입니다.
세갈은 200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독일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고, 2013년에는 베네치아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았습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도 대규모 프로젝트를 선보였습니다.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열린 리움미술관 개인전에서는 〈키스〉를 비롯한 작품 여덟 。을 소개했습니다.
리움에서는 관객의 동선과 건축, 미술관에 놓인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까지 세갈의 작업을 구성하는 조건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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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프로젝트는 그 조건을 다시 바꿉니다.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을 벗어나 자연과 숙박시설을 무대로 삼고, 관객이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작품과 연결합니다.
세갈은 리움 전시 기간 제주를 방문한 뒤 섬의 자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미술관 밖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었다는 설명입니다.
2013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진행된 티노 세갈의 퍼포먼스. 사람의 몸과 움직임이 작품을 이루며, 정해진 수행 방식에 따라 다른 해석자들이 작품을 이어갈 수 있다. (타라카 제공)
■ 사진도 계약서도 없는 작품… 그런데 미술관은 소장한다
세갈의 예술에는 독특한 원칙이 있습니다.
작품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작품을 거래할 때도 서면 계약보다 구두 합의를 고수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작품을 한 번 실행하고 끝내는 것은 아닙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세갈의 〈키스〉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이 확보하는 것은 전시장에 놓을 물리적인 물건이 아니라, 정해진 조건에 따라 작품을 다시 수행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방식도 일반적인 회화나 조각과 다릅니다.
세갈의 작품은 작가가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이어집니다. ‘해석자(Interpreter)’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대화하고 움직이며 작품을 만들어갑니다.
사람이 바뀌면 대화와 움직임도 달라지지만, 작품의 기본적인 구성은 유지됩니다.
미술관이 소장하는 것도 눈에 보이는 물건이 아닙니다. 작품을 다시 실행할 수 있는 권리를 소장하고, 다른 해석자들을 통해 전시를 이어가는 방식입니다.
반면 실제로 작품이 실행되는 순간의 대화와 반응은 그대로 보관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세갈의 작업이 가진 역설이 드러납니다.
기록을 거부하는 작품이 미술관의 소장품이 되고, 물질적인 결과물이 없는 예술이 거래됩니다. 작품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남겨진 물건보다 사람에게 전달되는 수행 방식입니다.
제주 프로젝트에서는 이러한 예술이 숙박과 결합합니다.
관객은 일정한 시간 동안 장소에 머물며 작품을 경험합니다. 숙박과 식사는 비용을 지불하는 서비스이지만, 그 사이에 발생하는 만남과 대화는 같은 형태로 다시 제공할 수 없습니다.
예술의 가치가 물리적인 소유물에 있는지, 다시 재현할 수 없는 경험에도 있는지 묻게 되는 이유입니다.
2013년 공개된 티노 세갈의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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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안에서 사람들의 움직임과 관객의 반응이 어우러지는 세갈의 작업 방식을 보여준다. (Linda Vanni, 2013년 8월 25일 공개 영상)
■ 20시간을 산다는 것… 숙박은 어떻게 작품과 만날까
이번 숙박형 프로그램은 약 20시간 동안 이어집니다.
주최 측은 전체 여정을 ‘비움·마주함·관계·회복’의 네 단계로 구성했습니다. 관객은 숲과 정원을 거닐고 식사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과정에서 세갈의 작품을 경험합니다.
고전문헌학자 배철현 교수의 인문학 프로그램과 라이프 아티스트 이효재가 기획한 제주 자연밥상도 마련됩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머무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됩니다.
숙박형 프로그램과 별도로 일반 관람도 가능합니다. 일반 전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며,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은 휴무입니다.
작품의 사진과 영상 촬영은 금지됩니다. 종이 입장권과 안내 책자도 제작하지 않고 모바일로 전시 정보를 제공합니다. 세갈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비기록 원칙이 제주에서도 적용됩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주목할 부분은 관객이 작품과 만나는 시간의 변화입니다.
미술관에서는 작품을 경험한 뒤 전시장을 떠나지만, 숙박형 프로그램에서는 같은 장소에 머물며 식사와 휴식까지 이어갑니다. 관객이 작품을 만나는 시간이 일상의 다른 활동과 겹쳐지는 구조입니다.
그렇다고 체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예술적 경험도 깊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개별 작품과 숙박 프로그램이 실제로 어떻게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관객의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이번 시도의 성과를 판단할 기준이 됩니다.
오는 30일 서귀포시 색달동 타라카 제주에서 개막하는 티노 세갈의 예술 프로젝트 초청장. 제주의 숲과 정원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는 〈디스 프로그레스(This Progress)〉 등 세 작품이 소개된다. (타라카 제공)
■ 사라지는 작품, 남겨진 기억
세갈의 작품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다시 실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객이 나눴던 대화와 그때의 반응까지 똑같이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정원을 걷고 같은 작품을 경험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짧은 대화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낯선 몸짓이나 목소리가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사진과 영상이 허용되지 않는 만큼 그 순간을 다시 확인하기도 어렵습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관객마다 다릅니다.
전시가 끝나면 타라카 제주의 숲과 정원은 그대로지만, 그곳에서 오간 말과 몸짓은 같은 형태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예술을 소유하거나 기록하지 않아도, 그 안에서 보낸 시간만으로 작품은 지속될 수 있을까.
미술관에서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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